교회소식

할렐루야!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신다고 했고,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청결히 해야 하고, 또 그것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야 한다고 했죠? 오늘은 그 마음을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해,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믿음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그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는 우리의 믿음은 어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맥락에서 말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죠? 이것은 오히려 행위에 앞서 우리가 먼저 우리 마음 가운데 가져야 할, 견고한 믿음, 온전한 믿음을 말한다 할 수 있죠? 이에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9장 23절의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한 믿음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준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이 말씀은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에게 귀신들린 아이의 아비가, 예수님의 제자들은 능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더이다고 말하고, 그래서 예수님이 그 아이를 데려오게 하시고 자초지종을 물을 때, 그 아비가 그 자초지종을 다 말한 후에,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했을 때,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인 것이죠? 그렇다면, 어떻습니까? 과연 여기서의 믿음은 어떤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전적신뢰라 할 수 있는 것이죠? 이에 이는 더 구체적으로 그분의 능력과 성품과 권세와 같은 것에 대한 전적신뢰라 할 수 있는데요, 이처럼 우리의 믿음은 오직 그분의 권세로 무엇이든지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그분께서 우리의 삶에 그분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로 능히 우리의 모든 염려와 걱정을 해결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19절을 보면, 예수님은 그 귀신들린 아이의 아비가 제자들에게 데려갔더니 ‘능히 내쫓지 못하더이다.’라고 하는 말에,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했죠? 그렇다면, 여기서 믿음이 없는 세대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이는 귀신들린 아이의 아비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아니면 제자들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렇죠?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죠?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그 아비의 믿음 없음을 주목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주목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믿음 없음을 각각 주목할 수 있어야 하죠? 왜요? 거기에는 저마다 다 우리에게 주는 귀중한 교훈들이 있기 때문이죠? 이에 귀신들린 아이의 아비는 당시 그 누구보다도 가장 절박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왔으나, 그는 원망하는 믿음으로 주를 반신반의하며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왜 당신의 제자들이 못 고치는 것입니까? 혹시 당신도 못 고치는 것이 아닙니까? 지금 본문에서 그가 내뱉고 있는 말들은 결코 우리 주님이 들으시기에 아름다운 말들이 아닌 것이죠? 만일 그의 믿음이 온전했다면, 이렇게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제자들에게 쫓아달라고 했는데, 하지 못했다고 말할 필요도 없었고, 또 22절에서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라고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실로 이런 말들 속에서 그가 보여준 믿음은, 단순히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에서 나온 복불복의 믿음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되면 되고, 안되면 안 되고!’ 어떻습니까? 혹 여러분의 믿음도 이와 같이 하나님을 원망하며, 반신반의하며,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되고! 라는 식의 믿음은 아니었는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구하는 우리의 믿음의 태도는 반드시 주실 것을 믿고 구하는 것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누가복음 18장 7절은,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난 한해 진정 어떤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삶을 살았는지를 점검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그렇다면, 제자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을까요? 제자들의 믿음은 예수님을 신뢰하는 견고한 믿음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그들의 믿음에는 무엇이 없었습니까? 능력이 없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왜 능력이 없었을까요? 28절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는 장면이 나오죠?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그런데 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할렐루야! 그들의 문제는 결국 무엇이었다는 것입니까? 그들의 문제는 기도를 하지 않는데에 있었다는 것이죠? 이처럼 우리의 믿음도 기도하지 않음으로 온전치 못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 믿음이 아무리 온전하다고 생각되어도, 기도하지 않는 믿음은 결코 온전한 믿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으면 그 믿음에 시험이 많은 것입니다. 여기서 제자들도 사실 시험을 받았고, 또 시험에 들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이처럼 우리도 기도를 쉴 때에는 여김 없이 시험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찌하든지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으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에는 여러분의 믿음이 기도로 더욱 온전해지고, 더욱 능력 있는 믿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당시 이 귀신들린 아이와 예수님 주변에 몰려 있던 무리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들의 믿음은 예수님 앞에 나와도, 정말로 참 믿음이란 없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이들 가운데에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아직 그들도 온전한 믿음이라 할 수 없고, 또 대부분은 구경꾼이었고, 예수님을 쫓아다녔다 하더라도 뭔가 콩고물이 떨어지길 바라는 자들이었지, 진정한 믿음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언제든지 예수님을 떠날 수 있는 자들이었고, 다만 예수님이 그들에게 기적을 보여주고 듣기 좋은 소리를 하시는 한은, 예수님 곁에 있을 수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러한 믿음을 진정 우리가 예수를 믿는 믿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이 믿음 없는 무리들은 어떤 일을 저지르고야 맙니까?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예수님을 쫓아가 호산나를 외쳤다가도,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는 폭군으로 변하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누구라도 예수님 앞으로 몰려간다고, 예수님 주변에 있다고, 다시 말해 그냥 교회를 다닌다고 다 진정 믿음의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이죠? 오히려 그들도 언제든지 예수님을 향해, 교회를 향해 돌을 던질 수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인터넷 상을 보면, 소위 기독교를 개독교로 부르며 교회를 대적하는 자들이 아주 성경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교회를 대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뭘 알 수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더라도 참된 믿음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도 언제든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대적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이렇게 될 때, 더욱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마태복음 15장을 보면요, 예수님께 “개들”이라는 모욕을 받고도, 예수님께 오직 믿음으로 매달렸던 가나안 여인이 소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요.(25-28) 그 여인이 예수님께 와서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하셨죠? 그런데 이에 대해 이 여인은 뭐라고 했습니까? 그는 화를 내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에 예수님은 그를 칭찬하여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과연 예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이라는 것입니까? 과연 누가 예수님 곁에 서서 그 은혜를 누리며, 누가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는 자라는 것입니까? 그는 오직 진정 우리 주님만 믿는 믿음으로 그분만을 바라보며, 어떤 비난과 모멸과 유혹과 고난이 닥친다 할지라도, 그 자리를 지키는 믿음이라는 것이죠? 이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요, 바로 이 믿음이 큰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이런 믿음의 사람에게는 항상 그가 믿는 그 하나님이, 필요한 은혜를 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해 동안 여러분의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는지를 점검하시고, 새해에는 더욱 주님을 떠나지 않고 오직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늘 그분 앞에 거하는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주님은 누가복음 17장에서 사도들이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했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실로 여러분의 믿음이 아주 적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오직 그 믿음이 참 믿음이라면,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과 기적 속에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런 2017년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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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연말특별새벽기도회 넷째날 "희생으로 새역사를 창조하자"(막10:35) 사무엘 2013.12.26
249 연말특별새벽기도회 셋째날 "예수로 새역사를 창조하자"(요1:9-13) 사무엘 2013.12.25
248 연말특별새벽기도회 둘째날 "말씀으로 새역사를 창조하자"(눅1:37) 사무엘 201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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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고난주간 특새 넷째날 요13:1-11 사무엘 2013.03.29
243 고난주간 특새 셋째날 요11:45-53 사무엘 201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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