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오늘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시며 세족식을 하시고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갈 시기가 임박했음을 아시고, 그간 가장 사랑하시던 제자들에게 이별의식을 거행하시면서, 마지막 사랑의 표시로 그들의 발을 씻기시고 계셨던 것이죠?

 

그러나 당시의 관례상 주인의 발을 닦아주는 것은 그 집의 종이나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낮은 노예들이나 하는 미천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스승이 되신 예수님께서 그 미천한 노예들이 하는 일로 제자들을 섬기고 계셨을까요?

 

본문을 보면, 결국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이를 반대하고 나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뒤로 물러나실 것인가요? 그러나 그럼에도 주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예수님은 거부하셨는데, 그냥 거부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네 발을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아주 강력하게 거부하시며, 이 섬김의 필연성과 절대성을 주장하시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하셨어야 했을까요? 과연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첫째, 우리 인간은 누구나 물로 씻듯 다 씻음을 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온 몸을 목욕하듯 한번에 죄를 씻어버리는 일들 외에도, 또한 매일 발을 씻듯 매일 매일 씻어야 할 죄들이 아직도 있는 구원 받았으나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회개에 부지런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회개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심보로 그런 말을 할까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진실로 매일같이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 씻지 못했다면, 내일 더 비누를 묻히고, 더 빡빡 문질러 때를 벗겨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더 많이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죄란 그 어느 것도 깨끗이 씻지 않아도 될 만한 것이 없으며, 자백하지 않아도 될만한 것이 없으며, 똑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그냥 덤으로 없어질만한 죄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115절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는데, 여기서 죄가 장성한다는 말을 보면, 죄는 결코 어느 것도 그냥 놔두면 나쁜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모든 죄를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지 않을 때는 때때로 고난도 주시고, 근심케도 하시는 것이지요?

 

혹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회개의 경고를 하시는 데도, 회개를 외면하고 있는 죄가 있지는 않습니까?

 

혹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은 날로 더해가는 데도, 그저 게으르고 태만하여 회개하고 돌이킬 생각조차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고난주간 다섯째날 이 아침, 여러분의 삶을 샅샅이 돌아다보며 아직도 회개치 못한 죄가 있는지를 깨달아 진실로 회개할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지기를 축원합니다.

 

M. R. 빈세트는 가만히 앉아서 눈물 흘리는 것만이 회개가 아니라, 슬픔을 행동으로 바꾸어 곧 새롭고 보다 나은 삶을 향하여 움직이는 것이 회개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번 고난주간을 통하여 참된 회개의 기회를 반드시 얻으심으로, 여러분의 삶이 진정 새롭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둘째, 아무리 우리가 회개한다 하더라도, 그 모든 죄사함의 공로는 우리의 회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의 보혈의 공로라는 사실입니다.

 

왜 예수님은 베드로가 나서서 굳이 말리는데도, 계속해서 직접 발을 씻기시며, 이처럼 예수님으로 발씻김을 받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셨을까요?

 

그 씻음이란 예수님이 씻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죄를 씻는 일이란, 오직 예수만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온 몸의 죄악을 씻는 일이든, 혹은 발과 같이 한 지체를 씻는 일이든, 그것이 한번이든, 매일이든, 그것은 오직 예수만이 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의 피 밖에는 우리의 죄를 씻을 길이 절대로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회개하고 삶을 돌이킨다 하더라도 예수의 피 밖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실 수밖에 없으셨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를 하면서도 언제나 나를 위해 보혈을 흘리신 예수를 생각하며, 늘 그 은혜에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회개하시면서, 오늘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나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하실 때가 있죠?

 

그것과 같이, 사실은 예수를 계속해서 못 박는 것은 아니지만, 늘 우리는 그러한 심정으로, 날마다 죄를 회개하며, 죄짓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죄 용서 받는 것이 회개하기만 하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세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예수의 보혈의 공로만 의지하여 회개하면, 어떠한 죄와 허물도 다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예수를 만나 변화된 사람, 특히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가장 사랑을 많이 받던 수제자였지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가 하나님 앞에서 또 다른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까? 없습니까?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해서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특히 성령충만으로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가 하늘나라 가는 그 날까지 온전하기만 했겠습니까?

 

우리가 가장 쉽게 살펴볼 수 있는 베드로와 바울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도 바울도 어쩔 수 없는, 연약한 인간임을 확인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은 늘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 회개했고, 또 회개하며 뉘우치는 가운데 새로운 기회를 얻고, 또 얻으며 날마다 자라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창세기 12장에서 시작되었던 아브라함의 삶이 22장에 이르러 모리아산에서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온전히 바치기까지 계속해서 자라나며 성숙해졌던 것처럼, 이들도 그렇게 자라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베드로후서 12절에서,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라고 문안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바로 더욱 많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인 줄 믿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3319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반드시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520절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실로 택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넘쳐나고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늘 이 은혜를 확신함으로 이 은혜를 붙잡고 주님께로 돌아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죄악으로 무너진 삶, 게으르고 나태함으로 왜곡된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서도 결코 변명하거나 실망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다시 그 은혜를 붙듦으로 또 다시 우리는 오뚜기와 같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여러분이 이 고난 주간을 통하여 믿음이 회복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거룩한 삶이 회복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사명의 삶, 십자가의 길로 돌아오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어제 고광문 선교사님이 아주 귀한 말씀을 전해주셨죠? 우리는 실로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앞세워 하나님을 뜻을 합리적으로 거절하는 심각한 죄악을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정 이 아침에도 우리의 신앙을 냉철하게 점검해 보는 가운데, 또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일어나 회개와 결단으로 잃어버린 참된 신앙이 회복되는 복된 아침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 주님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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