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고난 주간 어제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수난의 날이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고, 그로 인하여 우리의 모든 죄는 죄값을 치루게 되었고, 결국 그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실로 그의 고통이 얼마나 크셨으면 이렇게까지 버린다는 표현을 쓰시기까지 하셨을까요?

 

오늘날 우리는 글을 통하여, 또한 설명을 통하여 그의 고난을 이해하려 하지만, 실제로는 당해보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고난이 바로 십자가의 고난이요, 그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마지막 고난이셨다는 사실입니다.

 

엊그제 어느 목사님이 전화가 오셔서 제가 통풍으로 고생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하시면서 위로를 하시는 소리를 듣고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통풍으로 인한 고통은, 정말 당해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하물며 인간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도 이러한 데, 그 예수님의 정신적, 육체적, 극심한 모멸감과 치욕감은 물론 채찍에 맞으시고, 옆구리에 창이 찔리시기까지 십자기를 지시기 위하여,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당하신 그 복합적인 고통은 누구도 당해보지 않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이러한 예수님의 부르짖음에,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엘리야를 부른다고 하기도 하고,

 

또 한 사람은 오히려 해융에 신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고 조롱하였습니다.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내려 주나 보자

 

여기 신포도주란, 포도주로 발효한 식초에 약간의 계란과 물을 혼합하여 만든 음료이고, 이는 로마병사들이 갈증해소를 위해 자주 마셨던 음료수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직접 마실 수 없으셨기 때에, 그것에 신포도주를 적셔 예수님의 입을 대주어 빨아먹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을 받아 마신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큰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시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에게 신포도주를 마시게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결과와 그들이 한 말만 놓고 본다면,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더욱 조롱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성소에서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성소의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가리우는 절대거룩의 상징이었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쳐진 휘장은 그 두께가 약 10cm 가량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말이라도 양쪽에서 잡아당기면 절대로 찢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강한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쭉 찢어졌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 아들을 완전한 제물로 열납하신 하나님께서 그 동안 하나님 자신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혀 있던 휘장을 찢으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020절은, 이를 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육체를 찢으심으로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이라고 명백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영원한 중보자가 되심으로 죄악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직접 나갈 수 있는 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새 시대의 하나님의 성전이라 할 수 있는 성도들의 심령 속에는 여전히 여러 가지의 휘장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그 휘장들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로막힌 듯이 멀어져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침도 그 휘장들을 찢어버리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찢어졌던 성전의 휘장처럼, 우리 마음의 휘장, 삶의 휘장, 하나님 앞에서 그릇된 휘장들이 다 찢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어지는 이 고난주간 마지막 날 아침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첫째, 정죄의식으로 가로막힌 휘장을 믿음으로 찢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용서하셨고 해방을 선포해주셨는데, 사람들은 아직도 여전히 자신을 정죄하며 괴로워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이, 결코 고난으로 그쳐서는 아니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어제도 말씀드렸다시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뿐만 아니라, 그 고난으로 인한 모든 치유와 회복과 구원의 기쁨에도 놀라운 은혜를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고난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가 왜 성육신을 하시고, 왜 죽으셨어야만 했겠습니까?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했습니다.(53:5)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8:1)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지난 한주간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이 있었다면, 이제는 또한 모든 고난으로부터 해방함도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인 것이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헛되게 하지 않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 대인 관계에 가로막힌 휘장을 사랑으로 찢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막힌 관계도 다 찢어 하나로 만들어 주셨는데, 우리가 그깟 대인관계도 하나로 만들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를 향하여 가시면서 그의 제자들 가운데 새 계명을 주노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사랑하라고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에 버금가는 제2의 유언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물을 바칠 때에 형제와 불화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대인관계에 가로막힌 휘장을 찢어버리고 형제와 화목하는 일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찢어진 휘장이 다시 닫혀지지 않게 할 만큼이나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하십시오. 용서가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억만 죄악에서 용서 받은 자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이 크겠습니까? 어느 형제자매가 우리에게 범한 죄가 크겠습니까?

 

사실은 우리의 하나님 앞에서의 죄가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어마어마한 죄인 것이죠. 그런데도 우리 하나님은 다 용서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는 것입니다. (6:14, 15)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대인관계에 가로막힌 휘장을 사랑과 용서로 찢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영적 안일함에 빠진 휘장을 소망으로 찢어버리시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일수록 자기 안일의 휘장 속에 갇혀서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이만하면 됐다. 이만하면 됐지 뭘 또 해야 하는가? 내가 전에 얼마나 헌신하고 노력했는데.......????

 

이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받았던 은혜를 망각하고 자기아집에 사로잡혀 더 이상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하지 않으려는 때가 있습니다. 사명을 상실하고, 소망을 잃어버린 것이죠.

 

그러나 성경은, ‘선줄로 아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는 진실로 하늘나라 가는 그 날까지도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늘 겸손과 열심히 신앙생활 해야 할 줄 믿습니다.

 

어떤 분이 어제 카톡으로 이런 글을 보내셨더라구요.

 

하나님은 언제나 삼등입니다. 내가 건강이 안 좋을 때 일등은 병원에 가서 의사선생님을 찾습니다. 이등은 집에서 몸조리합니다. 삼등은 하나님을 부릅니다. 내가 경제적으로 힘들 때 일등은 돈 될 만한 일을 생각합니다. 이등은 열심히 노력합니다. 삼등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내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일등은 신문을 들고 화장실로 갑니다. 이등은 오늘 빵 어떻게 팔지? 삼등은 하나님 빵 잘 팔리게 해주세요.”

 

이외에도 많이 있지만, 여러분 어떻습니까? 과연 여러분의 신앙은 어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이죠?

 

경제적으로 힘이 들면 돈이 될 만한 일을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버는 일은 더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우선순위가 하나님이 일등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언제나 먼저 하나님만을 바라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바로 이 우선순위가 삐뚤어진 것이 영적 안일주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고난주간 마지막날 아침, 그 삐뚤어진 우선순위를 바로잡으심으로, 영적 안일주의의 휘장을 찢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반드시 회복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다시 교회가 회복되고, 믿음이 회복되고, 우리의 삶이 회복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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