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할렐루야!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습니까? 오늘도 그 기쁨이 계속 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성탄의 기쁨은 1365일 계속 되어야 하는 것이죠? 사실 우리가 성탄절 하면, 뭐 선물이나 주고, 발표회나 친목회나 하는 것처럼 생각해서 그렇지, 예수만 생각한다면, 성탄의 기쁨은 1365일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어제는 예수로 새역사를 창조하자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과연 우리가 예수로 새역사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제는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능력을 붙들고 새역사를 창조하자고 말씀드렸지만,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될까요?

 

성도 여러분, 예수로 새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오늘 우리는 예수의 삶을 본받는 자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삶은 무엇이라 할 수 있습니까? 한마디로 희생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예수님은 그 누구도 굴복하지 않을 수 없고, 범접할 수도 없는 그 놀라운 능력과 권세를 가지셨음에도 불구하고, 다만 그 능력과 권세로써만이 인생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목수라는 당시 가장 천박한 직업을 택하시고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시는 초라한 삶 속에서, 물론 그런 삶 속에서도 여전히 능력과 권세를 행하셨지만, 그래도 거기서 기꺼이 고난을 당하시며, 멸시와 천대 가운데 사시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치러주시고 우릴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삶을 한 마디로 무엇이라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희생이라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 분의 능력과 권세 이전에, 자신의 온전한 희생의 삶으로 새역사를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이에 고린도후서 89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써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우리 주님의 가난하게 되심을 통하여 이미 부요하게 된 자들인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을 잘 살펴보면요, 여기 주님의 부요와 우리의 부요가 대등함을 이루고, 주님의 가난하게 되심과 우리의 가난함이 대등함을 이루며 대조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우리와 같이 가난하게 되신 것이 우리의 부요함을 위한 것이라면, 그 우리의 부요함은 바로 우리 주님의 부요함에 능히 비견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만큼이나 부요하게 될 수 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성도가 누릴 수 있는 부요함은 한계가 없는 줄 믿습니다.

 

왜요? 예수님의 부요함이 한계가 없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분의 부요함이 한계가 없다고 그분이 이 땅을 사는 동안, 그 부요함을 다 누리며 사셨느냐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절대로 하나도 누리시지 않으셨죠? 오직 희생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 하늘나라에 올라가셔서는 그 모든 부요함을 다 누리시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야고보서 24절은,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로 인하여 이 땅에서 무엇이든지 누릴 수 있는 자이지만, 그러나 또한 예수와 같이 그것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고는 온전히 새역사를 창조해 나갈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이 당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나 정치인들과 같은 입장에서 복음을 전하셨더라면, 과연 그 복음이 복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누가복음 814절에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낮춤으로 예수와 같이 새역사를 창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복음의 방법론의 핵심은, 능력도 아니요, 권세도 아니요, 오직 낮아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 낮아짐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단순히 우리가 남에게 굽실거리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희생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또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10:45)

 

그 낮아짐은 바로 희생이었기에, 그분은 그냥 남들에게 머리를 숙이셨던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삶으로 남을 섬기셨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섬기셨습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그분은 말씀으로 섬기셨고, 능력으로 섬기셨고, 사랑으로 섬기셨고, 물질로 섬기셨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시며 아주 바쁘게 희생하며 섬기셨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분의 이런 희생적 사역은 급기야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루며 우리 인생들을 완전히 죄로부터 구속하시며, 영원한 가난함에서 영원한 부요함으로 인도하셨는데, 여러분 만일 이런 주님의 희생이 없으셨다면, 과연 우리가 오늘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을까요?

 

구속의 은혜, 돌보심의 은혜, 사용하심의 은혜, 형통케 하심의 은혜.....,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세만 가지고 가정과 자녀와 교회와 사회를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우리도 역시 그 분의 희생적 삶을 본받아 새역사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순교자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고, 오늘날 계속해서 이런 희생 위에 존손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과거 순교자들이 많을 때와 지금 순교자들이 거의 없을 때를 비교해 보십시오. 과연 어느 때의 교회가 더 건강한 교회로 세워졌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희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순히 몇 가지 일을 잘 감당하는 것이 희생은 아닌 것입니다.

 

프랑스 속담에 달걀을 깨지 않으면 오믈렛을 만들 수 없다는 프랑스 속담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달걀이 완전히 깨지지 않고는 오믈렛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죠?

 

예수님도 요한복음 1224절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희생은 이와 같이 우리 자신이 완전히 죽기까지 자신을 전적으로 내어주는 희생인 것이지, 결코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이렇게 하는 것은 희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의무이행이요, 책임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0절을 보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와 같이 죽도록 충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죽도록 충성하지 않으면 새역사는 창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지 않으면 영광도 없고 존귀히 여김도 없다는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지 않으면요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희생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교회 일을 니일, 내일’, ‘우리 구역일, 너희 구역일’, ‘장로님 일, 권사님 일하면서 자꾸 구분하고 구별하면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모든 교회 일은 다 하나님의 일인 줄 믿습니다. 그것은 어떤 조직 안에서 니가 할 일, 내가 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전부가 다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하든, 내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모든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이지, 결코 책임감이나 의무감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일을 할 때에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는 것이 정답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누구 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로 그 일이 진정한 희생의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한 기업가가 우연히 한 농부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농부는 농사를 꽤 많이 짓고 있는 모범 농부였는데, 그래서 그 농부가 일하는 농가를 이곳 저곳 둘러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밭도랑에 농부가 막 심으려고 놓아든 씨감자들이 하나같이 다 쭈글쭈글하고 상한 것들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업가는 왜 모두 이런 모양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감자를 많이 수확하려면 씨감자에 햇볕도 쬐이고, 차가운 겨울바람도 쐬이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시달리다 보면, 감사꼴이 그렇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어려운 환경에 시달려 볼품없게 된 씨감자가 더 많은 감자를 생산한다는 역설적인 이야기이죠?

 

그러나 이것이 주는 교훈이 크죠? 언제나 풍요롭고 넉넉한 생활이 더 큰 일을 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오히려 여러분처럼 역경을 헤치며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 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의 삶을 지금 이렇게도 연단하시는가? 왜 우리 평생이 전부 훈련이고 연단인가? 생각해 보면, 때론 곤고할 때도 있지만, 그러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분명 우릴 더 놀랍게 사용하시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더 놀라운 하늘 영광을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2014년에는 여러분의 희생으로 여러분의 가정, 자녀, 기업, 구역과 전도회, 그리고 이 교회와 사회와 민족이, 그리고 열방이 살아나고 세워지는 놀라운 역사를 꿈꾸며, 한 알의 죽어지는 밀알이 기꺼이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관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도 실로 모든 면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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