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삶을 살도록 돕는 QT(경건의 시간) 체험학습 과정으로 이 기간 동안 성경을 삶 속에 적용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실제적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훈련하며, 적용하는 과정입니다.
할렐루야! 눈이 많이 왔는데, 평안하셨습니까? 눈이 너무 와서 질러버릴 정도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눈은 축복의 상징과 같죠? 이 많은 눈과 같이 올 한해 여러분의 가정과 기업, 그리고 이 교회 위에 많은 복이 임하길 축복합니다.
나무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칡덩굴을 거두려고 붙들었는데 그게 하필 그늘에서 자고 있던 호랑이 꼬리였습니다.
그러니까, 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린 거였습니다. 깜짝 놀라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호랑이가 나무를 흔들었습니다.
나무꾼은 놀라서 그만 손을 놓았고 나무에서 추락했습니다.그런데 하필이면 떨어진 장소가 호랑이 등이었습니다.
이번엔 호랑이가 놀라 몸을 흔들었고 나무꾼은 호랑이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한 호랑이가 나무꾼을 떨어뜨리려고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무꾼은 살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 호랑이 등을 더 꽉 껴안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한 농부가 무더운 한여름 날씨에 밭에서 일하다가 이 광경을 보고는 불평을 합니다.
“나는 평생 땀흘려 일해도 사는 게 이 꼴인데 어떤 놈은 팔자가 좋아서 빈둥빈둥 놀아도 호랑이 등만 타고 다니네!”
어떻습니까? 우리도 이럴 때가 있죠? 눈이 오지 않을 때는 눈이 좀 많이 오는 것이 부러울 때가 있고, 또 눈이 많이 올 때에는 눈이 좀 안 오는 것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 삶에서 이런 상황이 하나님 앞에서 원망과 불평이 되어서는 아니될 줄 믿습니다.
사실 우리의 원망이나 불평이라는 것은, 오해로 인하여 생기는 경우도 많지만, 반드시 꼭 비상식적이거나 하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만 발생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스라엘의 원망도 보면, 홍해 앞에 섰을 때도, 어땠습니까?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쫓아오죠? 그러니까, 뭐라고 했습니까?
“애굽에 장사지낼 곳이 없어서 우리를 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만드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그러지 않았느냐?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기면서 이렇게 살겠노라 말이다.”
사실 불기둥이 막고 있어서 그렇지,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다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원망과 불평은 결코 비상식적인 것이라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마라에서의 원망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삼일을 걸어도 마실 물을 찾지 못하고 또 찾은 물이라고는 쓴 물이었습니다. 광야에서는 물이 생명인데, 어찌 불평할 조건을 갖지 못한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들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믿음에 있었던 것이죠?
10가지 재앙을 통해 출애굽을 시키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신 그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우리의 남은 길을 책임져 주실 것이다 라는 믿음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난 시간 하나님은 마라의 사건을 통해, 그들을 시험하셨다고 하시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모든 규례를 지키면 질병도 내리지 않고 다 치료해 주시겠다고 하시며 축복의 오아시스 엘림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뭘 요구하셨던 것입니까? 믿음과 신뢰를 요구하셨던 것이죠?
그런데도 인간은 참 하나님 앞에서 간사한 것 같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믿음의 확실한 근거들을 보여주시는데도, 당장 무엇인가가 부족하면 또 불평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런 상황이죠? 오늘 본문을 보면, 지난 시간 마라의 쓴물로 인한 원망 사건이후, 이제 출애굽한 지 한 달이 지나 신 광야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마침내 식량이 떨어지게 된 것이죠? 그러자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여전히 출애굽을 시키시고 홍해를 기적으로 건너게 하시고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고 엘림으로 인도하셨던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신뢰하고 있습니까? 아니죠?
그들은 다시금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기서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누구의 모습입니까? 분명 오늘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도 어려운 일이 오면 여전히 불평하고 원망하는 모습이 바로 이스라엘로 대표되는 모든 인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믿음”인 것입니다.
오직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이 인간에게 원하시는 것은 믿음인 것입니다. 오직 무엇에든지 원망하지 않고 믿고 행하는 자가 주의 축복도 받고 구원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 믿음이 없어서 원망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일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 것인가?
물론 우리가 그 결과는 알고 있지만, 분명 여기 이 본문 속에 숨겨져 있는 많은 교훈들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한절씩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다같이 1절을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이월 십오일이라.”
지금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 시나이 반도쪽으로 들어왔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시내산 쪽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여정을 보면, 지난 시간 그 홍해를 건넌 지점에서 더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라와 엘림을 지나 오늘 그 보다 더 남쪽으로 신광야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 광야는, 엘림과 시내산 사이를 신광야라고 보는데, 시나이 반도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있는 황량한 고원지대라고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주의할 점은, 민수기 33장이나 그 외의 성경에서도 가데스 바네아 부근에서 신광야라는 곳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거기서 모세가 뭘 했습니까? 반석을 두 번 꽝꽝 쳤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원문상 발음을 보면, “친”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본문은 ‘신광야’, 그곳은 ‘친광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나온 후, 제 이월 십오일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벌써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지가 얼마나 되었다는 것입니까?
민수기 33장 3절에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난 날이 1월 15일이었다고 했기 때문에, 그러면 얼마나 된 것입니까? 한 달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2백 만명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처럼 차로 다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 에너지 소비량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무슨 문제가 생겼겠습니까? 양식의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양식을 가지고 나왔다 하더라도, 그 많은 사람이 한 달 동안을 매일같이 걷는 상황에서 양식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3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그들은 지금 어떤 때를 상상하고 있습니까? 애굽에서 종되었던 때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출애굽기 2장에서 그들이 애굽의 압제로 인하여 그렇게도 울부짖던 노예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그래도 고기 가마 곁에 앉았었다! 고기는 실컷 먹었다는 말이죠?
또 떡도 배불리 먹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들이 노예신분으로써 먹으면 얼마나 더 잘 먹었겠습니까?
주석가들은 이들의 이런 말들은 다 과장된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표현들에 담겨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적어도 그들은 자신들을 노예로 사용했어도, 먹을 것은 다 주었는데, 너희들은 뭐냐?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뭔데 우리를 데리고 나와서 먹을 것도 주지 않으면서 이 고생을 시키느냐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에겐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반드시 정복해야만 하는 역사적 소명의식이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자긍심은 없었고, 오직 육체적인 욕구만을 갈구하는 비굴한 노예근성만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분명 성도에게 더 중요한 것은, 생활의 안정보다도 사명이요, 거룩한 백성으로써의 자긍심인 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당장 먹고 사는 데 급급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일에는 소홀하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인, 주일성수나 십일조나 전도생활에 소홀하죠?
우리는 분명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야 우리 삶에 모든 것을 하나님이 채워 주실 것임을 알면서도,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과 같이, 먼저 우리 삶의 필요와 안정을 위하여, 소명의식이나 자긍심은 뒤로 하고라도, 먼저 일시적 현세적 욕구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면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첫째, 여기서는 들어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같이 4절을 읽겠습니다.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 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생활의 염려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들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 속에서도 급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때가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도 아침에 집엘 잠깐 들어갔다 나오는데, 갑자기 와이퍼가 안 됐습니다.
비탈길을 내려오면서 차지붕위의 얼음덩어리가 앞으로 떨어지니까, 윈도우 와이퍼가 작동을 멈춘 겁니다. 차를 세워놓고 눈을 다 치워도 작동이 안되더라구요.
하는 수 없이 그냥 출발을 했는데, 눈보라는 억수로 몰아쳐 오죠?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앞이 거의 하나도 안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기도하며 다시 내려서 눈을 또 치우고 그 윈도우 와이퍼를 툭툭 때려보았습니다. 그리고 차안으로 들어갔는데, 역시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여” 하니까, 조금있다가 그것이 되더라구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기도는 하나님이 반드시 들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6장 30절을 보면,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그런 상황에서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심지어는 염려까지도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만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내리고 있는 것입니까? 아직 안 내린 것입니까?
아직 안 내렸죠? 왜 그럼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그냥 내려주시면 되지?
여기서도 지난 번 마라의 사건에서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율법을 정하고 시험하시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5절에서 시험하셨다는 말씀은, 얼핏보면 이미 마라의 사건을 통해 그들을 시험하셨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시험하신다는 말씀은 언제 하신다는 것입니까? 앞으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 지를 시험하신다는 말씀이죠?
그렇다면,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다같이 5절을 읽겠습니다.
“제 육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4절에는 날마다 일용할 것을 거두라고 했는데, 여기 육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지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의미상으로 알고 있지만, 문자적으로는 이해하기가 힘들죠?
다른 영어성경을 보면, 제 6일에는 그들이 다른 날에 비해 두 배로 거두어 들여야 할 것을 준비시키게 하라 고 되어 있습니다.
미리 두 배로 거둘 것을 준비하고 나가 두 배로 거두게 하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하라고 했겠습니까?
여기에는 그 이유가 없고, 2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뭡니까?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4절에서 하나님이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시험하신다는 말씀은 무슨 말씀이 되는 것입니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 지를 시험하신다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릴 시험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에 만나는 무엇이 되는 것입니까? 비즈니스나 돈버는 일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라시는 것입니까?
차라리 주중에 더 일하고, 주일에는 하나님의 날로 구별하여 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날은 “날마다 거두었던 것의 갑절이 되”는 은혜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물질의 축복을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하나님의 법 두 가지는, 바로 주일성수와 십일조인 것입니다.
십일조는 시험을 해보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진실로 여러분은 이 두 가지를 다 잘 지켜 성경대로 다 축복의 통로가 열리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축복이 먼저 입니까? 순종이 먼저 입니까?
여기 4절에서도 보면,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고 하셨죠? 순종이 먼저 인 것입니다. 뭐 채워주시면 준행하고 안 채워주시면 준행하지 않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언제나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6절을 읽겠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무슨 의미입니까? 저녁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죠?
얼마나 특별한 경험이길래, 이 경험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 것이요 라는 했는가?
우리는 알고 있죠? 뭡니까? 만나입니다. 맞습니까? 다같이 13절을 읽겠습니다.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사면에 있더니”
뭡니까? 메추라기이죠? 모세가 다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은 고기 가마 곁에 있던 때를 생각하던 이스라엘에게 메추라기를 주시고, 떡을 배불리 먹던 때를 생각하는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순서상으로 보면, 만나와 메추라기라기 보다는, 메추라기와 만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하루가 저녁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에서도 설득력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어찌하였든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필요를 다 공급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6절에서 모세는 그 특별한 일이 무엇이 될런지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8절에 가서야 암시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보다 더 중요한 할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다같이 7절을 읽겠습니다.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
무엇이 더 중요하게 할 말이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그들의 원망을 들으셨다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고기와 떡을 준다는 사실보다도 그들에게 더 중요한 사실은 바로 그들이 행한 원망이 하나님 앞에서의 잘못이었다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고 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종이요, 대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뭐 문제라는 것입니까?
다같이 8절을 읽겠습니다. “모세가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엔느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심이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뭐가 문제였다는 것입니까? 주의 종들을 향한 그들의 원망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왠만하면 주의 종에게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역사하시는 때에는 절대로 원망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큰 일이 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0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때를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내 생각과 내 뜻을 내려놓고 오직 인내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도 살고, 공동체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의 고난도 더 가중될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빨리 깨닫고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가운데 나타나셔서 말씀합니다. 다같이 12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겁을 주었지만,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메추라기와 만나의 기적을 통해 여호와께서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이겠습니까? 또 다시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죠?
다시 말해 우리 하나님은 정말 우리가 어떤 일이 있어도 원망하지 말고, 믿고 순종해야 할 전능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들을 벌하지 않으시고, 이들이 원망할 때마다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겠습니까?
저 나름대로 말씀을 묵상하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그들로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은 이 모든 사건들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만 믿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고자 하셨던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이들이 다른 곳에서 불평하고 원망할 때에는, 심지어 므리바에서 불평했을 때에도 모세만 책망하시고 이들은 놔두셨다는 사실과, 그러나 막상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둔 가데스 바네야에서 그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불평했을 때에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들을 거기서 그들을 저주하시고, 영원히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벌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하셨고,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자꾸 원망하고 불평하면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지만, 어느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는 그 모든 원망과 불평이 한꺼번에 다 쌓여서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결코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아야 할 가나안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영원한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예수 그리스도시오, 또한 그를 증거하는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다른 것은 다 용서하실지 몰라도, 복음 전하는 일을 막고, 선교를 막고, 사명 감당하는 일을 막고 불평하는 것은 결코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나 엄청난 기적이 일어나고 부흥되던 예루살렘 교회도 흩어짐을 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결국 안디옥에 가서야 선교를 하게 되었고, 그 교회는 날로 흥왕하여 전 유럽을 복음화시키는 전초기지로써의 역할을 감당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도 하나님께 놀랍게 쓰임을 받으려면, 지역과 열방을 향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줄 믿습니다.
이와 같은 비전 속에 적은 일에 원망하지 마시고, 오직 순종하여 사명을 이루는 복된 성도와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