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삶을 살도록 돕는 QT(경건의 시간) 체험학습 과정으로 이 기간 동안 성경을 삶 속에 적용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실제적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훈련하며, 적용하는 과정입니다.
지난 시간, 성도는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용서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권면에 이어, 오늘 본문에서는 평화와 감사 속에 살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분열이나 싸움이 아니라, 평강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들인 줄 믿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최후의 선물이요, 또한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명예와 재물을 주지 않으시고, 자신이 가지셨던 최고의 선물인 하늘의 평화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제자들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주신 최고의 선물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0년에는 정말 우리 주님이 주신 평강가운데서만 한 해를 보내시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어떤 인생의 폭풍우가 온다 하더라도, 그 폭풍우가 몰아치는 뱃속에서도 평안히 주무셨던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늘 평안하시기만을 축원합니다.
그러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는 말씀은,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장하게 하라.” 이 말은 원래 운동경기 때 심판이 하는 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심판자로 행동하라’ ‘명령하라’ ‘지배하라’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마치 심판관이 정확한 룰에 따라서 모든 경기의 결정적 순간에 정확한 판단을 내리듯이, 성도는 매결정의 순간에 그리스도의 평강을 좇아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에 따라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리십니까?
저는 마음의 평강을 따라 결정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정확하게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수년전 미국의 브렌트 보우어스에서, 지난 1천년 동안 인류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 1천명을 선정해 순위를 매겼는데,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구텐베르크는 금속활자를 발명해 서적의 대량생산을 가능케 했고,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했습니다.
콜럼버스는 인류가 활동하는 지리적 공간을 확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구텐베르크의 발명은 의도적 노력의 결과인 반면 콜럼버스의 발견은 어떻습니까? 착각의 산물이었습니다.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가면 아시아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고, 그래서 자신의 항로가 신대륙에 '가로막힌' 줄은 전혀 몰랐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훗날 아메리고 베스부치에 의해 신대륙임이 밝혀졌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유럽인들에게 신대륙은 축복의 땅이었지 몰라도. 신대륙 원주민 입장에선 엄청난 재앙이었습니다.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삼았습니다.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에 상륙한 1492년 25만명이던 에스파뇰라섬 인구는 1538년 5백명만 남았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신대륙 발견 후 원주민 1천6백만명, 그리고 같은 숫자의 아프리카 흑인이 희생됐을 것으로 추산합니다.
2002년 10월 12일 '콜럼버스의 날' 온두라스에서 흥미있는 재판이 열렸는데, 현지 인디오들이 주관한 이 재판에서 콜럼버스는 야만행위의 빌미를 제공한 장본인으로 기소되었다고 합니다.
재판 결과 극형이 내려졌고, 궁사 (弓士) 들은 콜럼버스의 초상화를 향해 화살을 쐈습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사실을 듣고 콜롬버스에 대해 어떻게 평가를 하시고 싶습니까?
미국 뉴욕 타임스가 세계 석학들을 대상으로 지난 1천년간 20개 분야에서 '최고' 를 조사한 결과 '최악의 사고' 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었다고 합니다.
실로 우리는 무엇이 가장 현명한 판단인지를 잘 모르며 살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무엇이든 판단하고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욥기 12장 5절은, “평안한 자의 마음은 재앙을 멸시하나, 재앙이 실족하는 자를 기다리는구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평안할 때에는 실로 재앙을 멸시하지만, 실족하여 잃어버리면, 다시 말해 평강을 잃고 잘못 판단하면,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가 우릴 덮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0년에는 그리스도의 평강으로만 무엇이든 결정하며 늘 평강 가운데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 두 번째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 그 앞에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 것인가? 그 다음 16절로 17절이 이것을 말씀하고 있죠?
다같이 16절을 읽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생활의 첫 번째는 역시 하나님 말씀이 풍성한 삶인 것입니다.
이것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라는 말씀은, 바로 우리 공동체가 감사하는 공동체로써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메시야 교회는 오직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만이 역사되어지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으로 가르치고, 말씀으로 권면하고, 말씀으로 무엇이든 행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가라하면 가고, 서라하면 서고, 오직 말씀에 의해 움직이는 공동체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사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감사함으로 찬양하는 삶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시는 시편이고, 찬미는 찬송이요, 신령한 노래는 복음성가와 같은 것이라 구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 모든 것은 하나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찬양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성도의 마음과 입에서는 항상 모든 종류의 찬양이 저절로 흘러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음악을 전공해서 이것을 좀 압니다. 찬양은 마음이 좋아야 나올 수 있는 것이지, 마음이 나쁘면 결코 찬양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가 없으면 마음이 어떻습니까? 좋지 않죠? 그래서 찬양이 형식적으로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은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이 되어, 늘 진실된 찬양이 흘러 나오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17절을 다같이 일겠습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주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언제라도 내가 잘하면, 우리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내가 못하면 우리 주님의 영광이 가리운다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성도의 주인이시고 성도는 그분의 종으로서 성도들은 이 땅에서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이 돌아가도록 행동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주 예수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 행하는 것으로 예수를 힘입어 늘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정말 감사하는 자는, 무엇을 하든, 오직 주의 영광과 그의 명예를 위해, 주 예수의 이름으로만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2010년 여러분의 각오는 무엇입니까? 성도 여러분, 한 가지 부탁드리는 것은, 2010년에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오직 말씀과 찬양과 예수 이름의 삶을 통하여 감사하는 한 해를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더 많은 감사의 제목들을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