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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삶을 살도록 돕는 QT(경건의 시간) 체험학습 과정으로 이 기간 동안 성경을 삶 속에 적용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실제적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훈련하며, 적용하는 과정입니다.

그물이 찢어지는 지라(눅5:1-11)

조회 수 305 추천 수 0 2010.03.09 17:44:28

할렐루야! 지난 한 주간도 주의 은혜 가운데 평안하셨습니까? 저는 지난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목사장로기도회를 통하여 많은 은혜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거기서 제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제가 그동안 너무 현실적인 문제들만 쫓아다니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도들의 어려운 문제, 교회의 어려운 문제, 제 자신의 어려운 문제....., 물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부르짖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그 대부분은 문제 해결을 위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당연한 것일까요,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당연히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 앞에 나아와 부르짖으며 매달려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습니까?

 

그런데 이번 집회 강사 목사님을 통해 깨닫게 해주시는데 그것이 아니더라구요.

한마디로 예수 믿는 사람은 불편하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됨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써 더 중요한 삶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지키며 그와 관계하는 삶이지, 결코 내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40일 금식 기도 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돌로 떡도 만들지 않으셨으며, 성전꼭대기에서도 뛰어내리지 않으셨던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됨을 지키기 위하여 배고픔을 택하시고, 기적을 일으킬 능력과 영광을 포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더 중요하고,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의 문제를 일시에 해결해 주는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됨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아버지가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어떤 신앙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엊그제 어느 기도 많이 하시는 분하고 대화를 했는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느 땐가, 그 분 안에, 입술로만 부르던 예수님이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을 때, 그 분 삶의 모든 문제들은 하나씩 풀러나가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그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 그가 가는 곳마다 문제가 해결되고 형통하는 역사가 저절로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이제 하나님께서 그를 향하여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비전만 보신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 하시면서 무엇을 체험하시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분명 여러분 모두를 축복의 통로로 불러 주신 줄 믿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면, 내 삶은 축복의 통로가 되어 내가 밟는 땅, 밟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다시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더욱 힘쓰심으로, 여러분의 잃어버린 축복을 다 회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분명 여러분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성공한다면, 축복의 통로는 반드시 열리고야 말 줄 믿습니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열리게 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 축복의 통로는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 어부로써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밤이 맟도록 배를 띄어 물고기를 잡으려 수고를 하였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예수님이 그곳에 오시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왜 오셨을까요?

 

그들로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을까요? 왜 오셨을까요?

 

그런데 4절을 보면, 먼저 예수님은 말씀을 전파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오신 첫 번째 목적은 분명 말씀을 전파하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끝나자마자 밤이 맟도록 수고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여러분, 왜 그러셨을까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많은 고기를 잡게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일까요?

그런데 그 때 이 말을 들은 베드로는 말합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기 위해 수고를 해도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물고기 잡이 전문가 베드로가 도대체 왜 이런 말을 하고 있을까요?

 

도대체 바로 이전에 예수님의 선포로부터 무슨 말을 들었길래, 자신의 모든 지식과 경험도 다 내려놓고 이렇게 순종하고 있을까요?

 

그런데 그렇게 말씀에 의지하여 내린 그물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다같이 6절을 읽겠습니다.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 지라.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린다면, 그 그물이 찢어지도록 축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여러분도 오직 여러분의 경험이나 지식이나 숙련된 기술과 같은 것들을 다 내려놓고, 말씀에만 의지하여 순종하며 산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의 삶에 풍성한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신명기의 주제가 아니겠습니까?

 

축복은 오직 순종에 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성경을 많이 본다고, 예배를 빠지지 않는다고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물론 기도를 많이 하고 성경을 많이 보고 예배를 빠지지 않는 것 자체가 순종하는 삶인 것이죠?

 

그러나 이것은 부분적인 것이고, 결코 결정적인 모든 축복의 수단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축복의 방편이라는 것입니까? 기도라는 것입니까? 성경많이 보는 것이라는 것입니까?

 

오직 순종,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 하나님 뜻에 대한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순종의 여부에 따라 어떤 이는 밤이 맟도록 수고해도 하나도 얻지 못하게 하시고, 어떤 이는 한번만 그물을 던져도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것을 받아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지금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처럼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일까요?

 

그런데 이 일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 같으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먼저 고백하겠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요? 8절을 읽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감사도 아니고, 앞으로 고기를 잡는 일에 도와달라는 부탁도 아니고, 죄인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요?

 

9절과 10절을 보면, 이는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랐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와 이 사건을 본 목격자들은 이와 같은 사건 속에서 무엇을 보았고, 왜 다른 고백도 아닌, 죄인이라는 고백을 하였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까?

 

베드로와 이 사건을 본 그 주변의 사람들은, 이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놀라운 신적 권능의 역사를 보았던 것이고, 그러므로 그 권능의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죄인이라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누구로 인정하며 고백하고 있었던 것입니까?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고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베드로가 그같은 기적을 체험하였다고만 해서, 예수를 하나님으로 인정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2 3절에서는 무엇을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까?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했을 때도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16, 17)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그 날 베드로로 그런 고백을 하게 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자신의 신적 권위를 나타내고자 이 자리에 오셨다는 말이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처럼 신적 권위를 나타내심으로 베드로를 회개시키고자 오신 것일까요? 그런 것입니까?

 

그런데 그 이후에 일어나는 사건은 우리에게 더 놀라움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다같이 10절 하반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무슨 말씀입니까? 고기 잡는 베드로를 사람 잡는 베드로로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시 베드로가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여러분이 만일 그 당시 시몬이었다면, 여러분은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셨겠습니까?

저 같으면,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이 로마의 압제 하에서 해방을 간절히 소망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예수님이 혁명을 일으키는 일에 동참시키시겠다는 말로 이해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말이 설득력이 있는 것은, 원문에서 사람을 취하리라는 말은, “사로 잡는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베드로는 이 말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었을까요?

 

주석가들은 이야기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이제부터 베드로는 생명을 구하는 전도자가 될 것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다음 11절을 보면, 이에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여러분 베드로가 이 의미를 알고 예수님을 좇았을까요? 그렇습니까?

 

저는 베드로가 아무 것도 모르고 예수님을 쫓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본문 어디에도 그가 복음을 위해 쫓았다는 말은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왜 예수님을 좇은 것일까요? 그것도 그의 모든 재산, 배와 그물, 모든 것을 내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왜요?

 

그것은 오직 그가 그물을 내렸던 단 한 가지 이유와 같이, 말씀에 의지해서, 예수를 좇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냥 알지 못하고 말씀만 듣고 좇았다는 것입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몰랐어도, 그저 “이제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는 말씀에 의지해서 예수를 좇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가 이렇게 말씀만 듣고 예수를 좇았겠습니까?

 

그렇게 하기만 하면, 어떻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까? 그 삶이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열매를 거둘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7절에서와 같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엄청난 축복을 누릴 것을 알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오직 말씀에 의지해서 순종하기만 하면, 그물이 찢어질 만큼이나 놀라운 복을 받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베드로를 부르신 것입니까? 결국 그로 하여금 그물이 찢어질만큼이나 축복해 주시기 위해서 그를 부르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훗날 베드로는 행 3:26에서,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그가 경험한 이 이야기를 그대로 그의 복음전파에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렇다면, 그가 과연 어떤 복을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받았겠습니까? 금은보화입니까? 명예입니까?

 

물론 그의 사역의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풍성한 공급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죤 폭스가 쓴 위대한 순교자들이란 책을 보면, “그는 로마에 가서 네로 황제가 대단히 좋아하던 마술사 시몬의 능력을 무력화시키고 양다리를 부러뜨림으로, 그리고 황제의 가족 가운데 몇 사람을 기독교로 개종시킴으로 황제의 분노를 사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마술사 시몬의 능력을 무력화시키고 다리를 부러 뜨린지 아십니까?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에 갔다가 이 마술사 시몬이 마술을 부리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는,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때의 상황을 상상해 본다면, 얼마나 재미난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기도하면서 두렵고 떨리는 일은, 기도하는 대로 하나님이 이루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그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도대체 어떤 축복을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받았다는 것입니까?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사람을 낚는 일”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큰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훗날 요한복음 21장에서 이것을 다시 확인시켜 주시고 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세 번이나 말씀으로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누가 사람 낚는 일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느냐?

 

그는 과연 “사람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더 사랑하여 그 뜻대로 순종하는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누구를 더 사랑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사랑하는 자는 사람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만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1 10절은,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 사람의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따르거나 사람에게 좋게 하는 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께 좋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는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2장을 보면, 그가 성령충만하여 설교할 때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는데, 그 수가 남자만 삼천이었다고 했습니다.

 

또 사도행전 3장과 4장을 보면, 그가 솔로몬 행각에서 말씀을 전할 때,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그가 바울과 같은 글 솜씨가 없어서 그렇지, 그는 이 숫자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바울보다도 훨씬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정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사람을 많이 낚는 어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훗날 결국 교회는 누구를 교회의 우두머리로 삼게 되었습니까? 베드로라는 사실입니다.

 

베드로가 받았던 그물이 찢어질 뜻한 축복, 바로 예수님이 그에게 장차 주시고자 하셨던 그 축복은, 신령한 사명의 열매에 대한 축복이었고, 더 나아가 천국의 영원한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6 19절에서 우리 주님은,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다 버리고 오직 말씀에 의지하여 예수님을 쫓았던 베드로는, 이생 뿐 아니라,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도 그물이 찢어질 듯한 축복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여러분, 여러분도 오직 말씀에 의지하여 주를 따르는 주의 제자가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번에 강사 목사님이 이런 예화를 들려주시더라구요. 자신이 포병부대 정훈장교로 근무할 때, 그 부대에서 아주 신실하고 성실한 안수집사님 상사 한분을 만났는데, 이 분이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부대 안에서도 아주 예수 잘 믿고 성실한 분으로 인정받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부대에 어느 대기업 회장님의 아들이 와서 그 사람 밑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이 분이 얼마나 성실하고 신실했으면, 이 분이 전역을 하게 되었을 때, 자신의 아버지 회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 이 분은 정말 신실한 분이십니다. 이분에게 맡기시면 정말 안심하셔도 됩니다.” 소개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상사는 군대생활을 마치고 그 회사 총무부장으로 취직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인정을 받아, 얼마 후, 그 회사가 외식산업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책임자로 발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무로 승진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거기서도 잘했다고 합니다. 정말 그 사업을 성실히 잘 경영하여 많은 이득을 남겨주고 회사에게 유익을 주며 종업원들에게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분이 이것을 맡아하다가 큰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외식사업은 주일에도 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는 이미 오전마다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와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업원들을 보니까, 교회를 나가라 해도, 일주일동안 너무나 피곤하니까, 주일 아침에 잠을 자느라고 교회를 나가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져서 그 좋은 직장에 사표를 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그는 결코 돈벌려고 직장에 다녔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명 감당을 위해 다녔던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십니까? 그가 그만 둔다고 하니까, 즉시로 회장님이 불러서 “왜 일을 그만 두려 하느냐?”고 묻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집사님이 자신은 주일을 지키는데, 종업원들은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보니까, 책임감이 느껴져서 사표를 냈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이게 이유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회장님이 어떻게 한 지 아십니까?

 

그냥 다른 말도 필요없이, “그래? 그럼 주일날은 쉬어, 문닫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왜 그랬을까요?

 

여러분, 어떻게 이분이 이런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가 과연 회장 아들에게 잘 보여서, 회장에게 잘보여서 그런 것일까요?

 

성도 여러분,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위해 살려하지 말고, 좀 불편하더라도 내가 가진 것을 잃을까봐 걱정하며 살지 마시고, 오직 사명 감당을 위해 여러분의 것을 포기하며 사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사명을 위해 내 것을 포기하는 자가 된다면, 거기서도 반드시 인정받고 축복받게 될 줄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지혜로운 자는, 결코 한 신실한 믿음의 사람을, 다른 어떤 것과도 바꾸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그는 오직 사명감에 사로잡혀 어디서 일하든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러므로 하나님은 결국 그에게 그물이 찢어질 듯한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셨던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오직 사명을 위해 사심으로, 그물이 찢어질듯한 은혜와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지금은 이 땅에 영혼구원의 사명을 위해 하늘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던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며 그 고난에 동참하는 사순절 기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그의 고난을 생각하며 여러분 몫에 태인 사명의 십자가를 지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을 부르신 목적이요, 성도의 본질이며, 주님 안에 거하는 일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을 회복하는 길만이 우리가 다시 일어나 축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길이라 믿습니다.

 

고린도후서 7 8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잠시만 근심케 하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다시 사명을 위한 자리로 내려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나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 29:11)

우리에게 근심을 주셨던 하나님은 또한 우리에게 더 놀라운 평안과 소망의 성취를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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