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장은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침공하기 위하여 아벡에 집결한 상태에서 다윗의 출전을 반대함으로 다윗은 시글락으로 돌아가고, 블레셋은 이스라엘이 진을 치고 있는 이스르엘로 전쟁을 하러 올라가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블레셋과 이스라엘과의 전쟁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데 오늘은 그 이전에 먼저 다윗이 돌아간 시글락에서 벌어진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과 2절을 읽겠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제 삼일에 시글락에 이를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남방과 시글락을 침로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 있는 대소 여인들을 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 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1절에서 다윗이 시글락에 이를 때에 이미 아말렉이 남방과 시글락을 침로했다는 말은, 벌써 아말렉이 시글락을 치고 돌아갔다는 말이죠?
이 앞에서도 위기를 맞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위기를 넘기며 한숨을 돌리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게 또 무슨 날벼락입니까?
2절을 보면, 모든 여인들까지 잡아갔다고 했는데, 3절을 보면, 성을 불사르고 자녀들까지도 잡아갔고 5절을 보면,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사람 나발의 아내되었던 아비가일도 사로 잡혔더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아내들과 자녀들까지도 다 잡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4절은,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고 했습니다.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다는 말은, 너무나 울고 또 울어서 더 이상 울 힘도 없을 정도로 울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윗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그는 지난 번 동족과의 전쟁을 치러할 위기에 곧바로 또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인데, 그렇다면, 이제 다윗은 어찌할 것인가?
6절에서, 백성들이 다윗을 돌로 치기까지 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다윗을 따르던 자들도 다윗에게 실망을 하고 배반할 조짐이 보이는데, 그렇다면 이제 다윗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우리 삶에도 이런 위기의 연속을 경험할 때가 있죠? 한 가지 위기를 잘 넘기고 나니까, 또 다른 위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위기를 넘긴 기쁨을 누릴 틈도 없이, 그 다음 연속되는 위기로 인하여 더 큰 실의에 빠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지금 다윗의 백성들이 다윗에게 보이는 태도는 바로 그런 것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다윗이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기 이전에, 왜 근본적으로 다윗에게는 이런 위기가 끊이지 않고 있었을까? 라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왜 여러분의 삶에는 위기가 끊이지 않는 삶을 살 때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하나님의 은혜가 여전히 여러분의 삶을 돕고 있음에도 위기가 계속되는 것을 경험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에 성경학자들은 지금 다윗에게 일어난 일은, 다윗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울의 칼을 피하려고 블레셋으로 망명하였고, 또 이러나저러나 어찌하였든 자기 민족을 치는 전쟁의 참전 명령까지 수락을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써 일어난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의 잘못은 우리 삶에 위기를 가져다 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고, 또한 계속된 잘못은 계속된 위기를 역시 가져다 줄 수 있음도 보여준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윗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만일 이 위기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것이라면, 다윗은 여기서 이대로 끝나는 것일까요?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결코 택하신 자를 버리시는 법은 없으시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위기를 맞더라도 실망할 것이 없는 이유는, 이를 통해 다윗은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미래와 관련해서 이것은 신속한 추격으로 이루어낸 다윗의 군사적 역량과 더불어 다윗의 왕으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였던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다음 장에 나오는 사울 왕가의 몰락과 대비되는 본장의 내용은 사무엘서 전개과정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으로서의 중요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6절을 보면, 다윗은 돌로 맞아 군급하게 되는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힘입고 용기를 얻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군급하다는 말은, ‘일이 펴이지 않고 꾀어 형세가 급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원문의 단어는 간단하게 ‘궁핍해지다 고생하다. 결핍하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다윗은 모든 백성들로부터 버림을 받는 궁핍한 상황 속에서도 결코 실망치 않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힘을 얻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제 하나님께 묻고 있습니다.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8절을 읽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시고 계십니까? 쫓아가라 그러면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하셨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오히려 다윗에게 용기와 확신을 주시고 계심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은 도대체 누가 벌여놓은 상황이란 말이 되는 것입니까?
어쩌면 하나님이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왜 그러신 것일까요? 뭔가 좋은 느낌이 밀려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에 9절과 10절을 읽습니다. “이에 다윗과 그와 함께한 육백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는 뒤 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렀으되, 곧 피곤하여 브솔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인을 머물렀고 다윗은 사백인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
다윗에게는 여전히 6백명의 용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제 그들이 쫓아갈 때, 그 가운데서 피곤치 않은 4백명의 정예용사만 데리고 갔음을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사실 피곤하기는 다 마찬가지였다고 볼 수 있죠? 그럼에도 어떤 사람은 낙오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쫓아갔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우리들도 이 세상의 삶에 다 지쳐 피곤할지라도 다윗과 400명의 군사와 같이, 자신에게 주어진 목표를 향하여 부단히 쉬지 않고 영적전쟁을 계속해 나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결코 고삐를 늦추는 낙오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승리의 주역은 누가 되었습니다. 바로 다윗과 이 400명이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영적전쟁의 승리를 이끄는 주역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낙오자와 같은 인생, 물론 다른 400명으로 인하여 함께 승리의 기쁨을 누리기는 하지만, 그러나 주역이 아닌 구경꾼으로,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으로써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뛰어난 전투력이나 전술적인 지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어차피 승리케 하신 영적 전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인내함으로 신앙의 경주를 늦추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승리는 분명히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고, 그럼에도 우리는 승리의 주역이 되는 영광을 감히 받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히브리서 12장 1절로 2절은,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온전히 승리케 하시는 예수만 바라보며 늘 인내로써 여러분 앞에 놓인 경주를 그치지 않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의 삶을 승리로 이끄실 줄 믿습니다.
오늘은 시간상 여기서 마치지만, 한 가지만 덧붙인다면, 하나님과 무관하게 이룬 것은 반드시 허무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약속의 땅이 아닌, 이방 땅 시글락에서 다윗이 이룬 것들은 모든 것들은 하나님과 무관하게 이룬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과 무관하게 이룬 것의 결과는,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고 다 잃어버리게 되는 허탈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을 떠나서 무엇을 이루려 한다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루려 해야 할 줄 믿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하루의 여러분의 삶도 하나님안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모든 것을 이루심으로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다 남아 쓰임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